
맘만 먹으면 뭐든 그럭 저럭 할 수 있고
세상은 어찌 됐든 내 편일 것만 같던 젊은 시절,
우연히 탈랜트 김 수미씨의 수필을 읽게 되었다.
어찌나 글을 맛깔나게 써놨던지
밤 깊도록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책장을 넘겼었고.
거기에 그런 얘기가 쓰여 있었다.
<사랑은 교통 사고다.>
이쁜 신입 탈랜트들이 하도 스캔들을 일으키기에
김 수미씨가 질책하듯 몇 마디 했더니
옆에 있던 동료 탈랜트 김 혜자씨가 그랬다는 거다.
사랑은 교통 사고라고.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하려 해도
주위에서 대책없이 쳐박으면 어쩔 도리가 없는 거라고.
그게 그런가?
방어 운전을 잘하면 될 거 같은데...
그러면서도 한 편
그런 거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곤 세월이 흘러 내가 사랑을 할 때였다.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기만 하고,
사랑받고 있단 설레임에 마음은 마냥 하늘을 날고,
편지라도 한 통 쓸라치면 좋은 시 어떤 걸 넣을까
여기 저기 시집을 뒤지고.
그러다 눈에 들어온 문귀가 하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장 큰 장점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럴까?
그가 이렇게 좋은 건 그가 날 사랑해 주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짝사랑엔 아예 관심조차 없던 나였으니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듯 싶었다.

또 시간은 유수같이 흐르고,
누군가 내게 생각지도 않은 버거운 감정을 토로해
나조차도 힘들었던, 짙은 시간이 막 지난 후였다.
감정이든 뭐든 넘침은 부족하니만 못하구나 싶었을 때.
어느 책에선가
내 맘을 비집고 들어온 글귀 하나가 있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것이 결코 자신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를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맞아.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자신의 감정에 빠져서
상대방의 감정따윈 전혀 아랑곳 않고 집착하는,
그래서 사랑의 기쁨을 주는 것이 아니라
태산을 짐 지고 살게 하는...
사랑이 결코 자기 자신 혼자만의 감정으론
이뤄질 수 없다는 걸 망각한 채...
이제 흰 머리가 하나 둘 보이는
중년의 나이 되고 보니
사랑이란 감정이
어찌나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지,
그 시절 그 언약들은 다 어디로 흩어지고
거울 앞엔 나이 든 여인네만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는지.
허긴 누군가 그랬다.
<사랑할 때 한 언약들은
사랑할 때까지만 유효하다.>고.
그래, 사랑이 지나간 자리엔
폐허같은 기억들이 수북히 싸이게 마련이지.
때론 아쉬움,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때론 회한이란 이름으로.
내 지난 날을 반추하며
사랑의 편린들을 가만 주워보니,
내 손에 먼저 잡히는 것은
사랑받았던 기억들보다
내가 사랑했었던 기억들.
유치환 시인이 노래했던가.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 하나니라.>고.
나이 들수록
타인이 내게 보여주었던 감정들보다
내 자신이 품었던 그 느낌 하나하나가
더 귀하고 간절한 거다.
감정을 일게 한 그 모든 것들에 감사할 뿐이고.
그렇게
사랑이란 감정은
내게 많은 느낌표를 남겨 주었다.
사랑!!!
다 그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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