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농담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 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 끝을 보다
신혼의 첫 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 그늘보다 몇 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더 깊어 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길 오르다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 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 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열매보다 몇 알이나 더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
농담이 나무그늘보다 더 더 깊고 서늘했다
-천양희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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