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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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로 만나 물방울의 말을 주고받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의 강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세상의 여행에 지치면 쉽게 한 몸으로 합쳐질 수 있었다. 사막을 만나거든 함께 구름이 되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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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저녁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아래쪽에서 깊어져 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기울고 함께 일어섰다. 번개도 우리를 갈라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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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영원히 느티나무일 수 없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우리는 몸을 바꿔 늑대로 태어나 늑대부부가 되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늑대의 춤을 추었고 달빛에 드리워진 우리 그림자는 하나였다. 사냥꾼의 총에 당신이 죽으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늑대의 몸을 버릴 수 있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이제 우리가 다시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 약속했던 대로 사랑을 하고 전생의 내가 당신이었으며 당신의 전생은 또 나였음을 별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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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신은 왜 나를 버렸는가 어떤 번개가 당신의 눈을 멀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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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다시 물방울로 만날 수 없다. 물가의 느티나무일 수 없고 늑대의 춤을 출 수 없다. 
별들의 약속을 당신이 저버렸기에 그리하여 별들이 당신의 약속을 저버렸기에 ... 
사랑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나는 갑자기 존재의 탈바꿈을 경험했다. 무가치하던 존재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잠자고 있던 어떤 향기가 내 안에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삶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사랑이 다가올 때 물러서거나 피하지 말라고, 그 사랑의 고통은 심장이 타 버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하나의 연금술처럼 순수한 영혼을 탄생시킨다고, 그때 너는 인생의 의미를 비로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참다운 삶이 무엇이라는 것도 어떻게 살아야함도 이 사랑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삶은 도피가 아니다. 사랑 역시 그러하다. 우리가 이 별에 우연히 태어나지 않았듯이 사랑 역시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삶의 모험을 헤쳐나갈 때 아름다운 것은 비로소 그 아름다움을 발할 것이며 고귀한 것은 비로소 고귀함의 가치를 빛낸다. 그 가치는 나눔을 통해서만이 우리에게 빛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사랑은 그냥 서 있어선 안된다. 사랑은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줄어들든지 아니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이 별의 사랑은 그 점에서 독특하다. 이 지구별에서는 사랑을 키워 나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존재를 아름답게 만들고 그러면 하나의 대상에 한정된 것을 벗어나서 존재 전체가 사랑으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부처는 사랑에 반대했지만 오히려 자비를 강조한 것이다. 대상없는 사랑, 즉 아집을 벗어난 사랑을 역설한 것이다.
사랑에는 묘한 속성이 있다. 그것은 마치 불사조가 자신을 불로 태워서 죽어 버리고 그 재에서 다시 소생하듯이 사랑은 죽음을 거칠수록 더욱 큰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랑의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듯이 사랑의 죽음 또한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은 나에게 가르쳤다.
사랑의 죽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는 이별이라고 부른다. 사랑의 아픔만큼이나 이별의 아픔은 큰 것이다. 그러나 이 아픔 속에서 마치 잿더미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불사조처럼 더 큰 사랑으로 생명력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사랑이 있는 이 별에는 역시 이별이 있다. 사랑의 순간을 예감하지 못했듯이 우리는 이별의 순간 또한 예감하지 못했다.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했으며, 때로는 서로 멀어져감을 두려워했다. 칼릴 지브란이 말했듯이, "저 사원의 기둥들이 한 지붕을 받치고 서 있으나 서로 떨어져 있듯이, 함께 있으나 거리를 두라"를 우리는 감히 실천하기 어려웠다.
내가 사랑한 여자, 지금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 삶에서 만난 그녀를 못내 그리워한다. 그 만남으로 인해 내 정신은 깊어지고 삶에 대해, 삶의 모든 것들에 대해 비로소 나는 깊이를 갖게 되었다.
누구나 잘난 체하여 마지 않는 이 세상에서 홀로 정신적인 깊이를 가졌던 여자, 내면에 왕비와 같은 고귀함을 지녔으며 백조와 같은 순결함을 가졌던 여자, 그 고귀함과 순결함이 성숙하지 못한 정신을 가졌던 나로 인해 얼마나 많이 상처입었던가?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정신적 폭력이 행해지는 이 별에서 나 또한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것을 후회하나 우리는 별들이 스쳐 지나가듯 그렇게 멀어져갔다. 별들은 우리에게 사랑의 순간을 마련해 놓았듯이 이별의 순간 또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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