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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尺) / 김원호

DimondBack 2010. 7. 5. 05:49

  

 

 

 

 

  

    자(尺)

 

 

         언제부터인가 나는
         마음속에 자를 하나 넣고 다녔습니다.


         돌을 만나면 돌을 재고
         나무를 만나면 나무를 재고
         사람을 만나면 사람을 재었습니다.

         물위에 비치는 구름을 보며
         하늘의 높이까지 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가 지닌 자가
         제일 정확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잰 것이 넘거나 처지는 것을 보면
         마음에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확실하게 살아야한다고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가끔 나를 재는 사람을 볼 때마다
         무관심한 체하려고 애썼습니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틀림없이 눈금이 잘못된 자일 거라고 내뱉었습니다.


         그러면서 한번도
         내 자로 나를 잰 적이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직도 녹슨 자를 하나 갖고 있지만
         아무것도 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