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전경린
사람은 살아 생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나는 한덩이의 미분화된 나인체로 운행을 시작한다.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지금 나의 생은 너무 사소해서, 이걸하든, 저걸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차이가 나겠지, 지금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 의한 아주 큰 차이. 나중엔...그걸 지금 알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안다면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욕망의 순수한 증여이다.
삶의 주변에는 늘 독이 널려 있다. 그 독의 치사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변하지 않고는 왜 살수가 없는 것일까. 왜 자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걸까.
누구에게나 감시받거나 검토 당하지 않는 인생, 무엇을 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할 뿐, 그곳은다만 내 생의 중립국이며 완충지대인 것이다. 사람들은 옷을 입은채로는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입은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다. 마음속에 금기를 갖지 말아야 한다.
생은 그렇게 인색한게 아니니까, 옷을 말리는 것 따윈 간단하다. 햇볕과 바람속에 가만이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살갗이 간고등어처럼 좀 짜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더 젊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사람들은 묻는다. 더 젊어져서 무엇을 하려느냐고, 글쎄, 사랑도 한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더 젊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늙어가는 여자에게는 젊어지는 것 자체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과도한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삶이며 동시에 맹목이다.
누구에게나 현실이란 비현실적인 것이다. 우리가 생생한 실존을 경험하고 삶과 부재 사이의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인생에 몇번이나 오겠는가. 삶은 언제나 결핍 아니면, 환멸의 벼랑인 것이다. 그러니 환멸과 결핍, 그 사이에 추억과 꿈의 세번째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경우 누가 추억과 꿈을 비현실이란 할 수 있겠는가.
이 삶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처럼,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쉴 수 있는 진정한 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실현된 것은 먼저 꿈꾼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아득하다고 해서 그것을 꿈이라고 말한다면 난 기꺼이 꿈꾸는 사람이 되련다.
사랑이란 산 너머를 보는 신비한 힘, 진정한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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