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읽으며

나비 / 전경린

DimondBack 2010. 7. 5. 01:45

 

 

 

 

  

사람은 살아 생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고 한다.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인 것이다.

 

 

 

 
지구인들의 65퍼센트가 환생을 믿는다고 한다.

 나는 한덩이의 미분화된 나인체로 운행을 시작한다.
처음에 달이 그랬듯이....
그 어둡고 쓸쓸한 하나의 혹성이 제운행 속에서 드디어
달이 되었듯이...나는 나를 운행한다.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사랑은 처음부터 시작된다. 탄생과 함께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 사람은 저마다 자신이 만날 사랑을 키우면서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생동안 사랑을 발견하려고 한다.
자기 속에 묻혀 있는 사랑을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그런느낌, 그런 냄새, 그런 눈빛, 그런 손의 형태, 그런 손의 촉감......

 

 

 


수많은 사랑에 관한 이미지들을 나는 오늘도 찾아 헤맨다.
그리하여 어느날 사랑에 빠지면 그 모든 것이 옛날에 일어났던
어떤 기억을 일깨우는 것같이 전율이 인다.
사랑은 그러므로 합리적인 갈망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본능이다.
  

 

 

 

  

지금 나의 생은 너무 사소해서, 이걸하든, 저걸하든, 뭔가를 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든,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나중에 차이가 나겠지,

지금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 의한 아주 큰 차이. 나중엔...그걸 지금 알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필연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안다면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은 욕망의 순수한 증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은 소문처럼 그렇게 도처에 널린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여전히 매우 예외적이고 특별한 이야기,
그것이 사랑이다.

 
 


 

삶의 주변에는 늘 독이 널려 있다. 그 독의 치사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독을 이기지 못하면 잠이 쏟아진다. 잠, 그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죽는 것이다.
독은 독으로 푸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자르듯이,
사랑은 사랑으로 이겨낼 수 있고, 마움은 미움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변하지 않고는 왜 살수가 없는 것일까. 왜 자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걸까.
난 나 이외의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인 채로 끝까지 가보고 싶다.


나는 나만의 방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원하는 방의 조건은 단 한가지 뿐이다.
이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 있을 것.

 

 

 

누구에게나 감시받거나 검토 당하지 않는 인생,

 무엇을 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사는 것이 중요할 뿐, 그곳은다만 내 생의 중립국이며 완충지대인 것이다.

사람들은 옷을 입은채로는 바닷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옷을 입은채 바닷물에 빠지는 것도 인생이다. 마음속에 금기를 갖지 말아야 한다.

 

 

 

 

생은 그렇게 인색한게 아니니까, 옷을 말리는 것 따윈 간단하다.

햇볕과 바람속에 가만이 앉아 있으면 되는 것이다.

살갗이 간고등어처럼 좀 짜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더 젊어지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사람들은 묻는다.

더 젊어져서 무엇을 하려느냐고, 글쎄, 사랑도 한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더 젊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늙어가는 여자에게는 젊어지는 것 자체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과도한 목적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삶이며 동시에 맹목이다.
 

 

 

누구에게나 현실이란 비현실적인 것이다.

우리가 생생한 실존을 경험하고 삶과 부재 사이의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인생에 몇번이나 오겠는가.

삶은 언제나 결핍 아니면, 환멸의 벼랑인 것이다. 그러니 환멸과 결핍,

그 사이에 추억과 꿈의 세번째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경우 누가 추억과 꿈을 비현실이란 할 수 있겠는가.

 

 

 

 

 이 삶이 모두 현실이 아닌 것처럼, 그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쉴 수 있는 진정한 현실일 수도 있다.
아직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꿈이다.

 하지만 모든 실현된 것은 먼저 꿈꾼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아득하다고 해서 그것을 꿈이라고 말한다면 난 기꺼이 꿈꾸는 사람이 되련다.
 

 

 

  

사랑이란 산 너머를 보는 신비한 힘,
그러니 진실 따윈 사랑의 몫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가 아니라,
존중이었다.

 

 

 
사랑이 영원한 것은 그 자신의 진실 때문이 아니라,
존재의 불가능성과 남루함, 그리고 상처 때문이다.
세상에는 진실보다 더 깊고 영원보다 더 먼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깊은 상처를 벌리며 끌어안게 되는
절대적인 사랑, 아직 다하지 못한 사랑이다.